죽음에 관하여

 

8월에 나의 가까운 친구가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떴다. 고작 서른살인 나에게 죽음이란 단어는 나에게 너무 무거웠다.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도 다 살아계셔 가까운 사람의 장례를 치른 경험도 없었다.  

이 친구는 나와 초, 중 동창으로 고등학교는 달랐지만 학원과 독서실도 같이 다니며 학교가 다름에도 거의 매일같이 봤던 친구이다. 지금은 내가 속해 있는 농구부 맴버이기도 하다. 어렸을적부터 성인이 될때까지 수 많은 순간들을 함께했다. 

나의 입대 전날에 당시 하사였던 친구는 우리집 앞에 와 나도 하는데 너도 할 수있다며도 격려해주기도 했고, 휴가 나와서도 만나고. 많은 추억들 중 내가 제대했을때 고생했다며 죽을때까지 술을 같이 마셨던 기억이 가장 생생하다. 

새벽에 농구부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의 이름이 보일때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생각했다. '보통 술마시라고 빨리 나오라는 전화가 대부분인데, 지금 술마시라고 나오라 하기엔 너무 늦었는데?' 라고. 

소식을 듣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머리털이 솟는 경험을 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저녁에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울고 있었다. 영정사진을 보고서야 눈물이 났다. 

장례식 이후 우리 동네에 있는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치렀다. 20년 이상을 매일 지나치던 성당이지만,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치루는걸 본 적은 없었다. 관을 싣고 떠나는 차의 뒤를 보며 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친구의 장례를 치루기엔 우리들은 너무 어렸다. 

우리는 농구부는 한 그룹이였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그와 관계를 가졌고, 그에 대한 각자의 기억도 달랐다. 주찬이는 정 많고, 정의롭게 살았고, 언제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겨운 사람 냄새가 나는 친구였다. 내가 본 그의 모습은 그랬다. 친구를 떠나보내며 다짐을 했다. 이 친구 몫까지 열심히 또 사람답게 살겠다고.



친구를 보낸지 3개월이 흐른 지금, 얼마전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나 추가로 말을 붙인다. 선배가 할머니의 장례를 치루고 수년이 흐른 지금, 할머니의 사진을 보며 할머니를 기억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할머니의 목소리가 기억이 안난다고..

주찬이는 내 마음속에 있겠지만, 언젠간 나 역시 주찬이의 목소리가 생각이 안나는 시점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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